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유연한 협력
『사피엔스』 첫 장을 넘기면 저자가 직접 쓴 “From one Sapiens to another"라는 문구가 있다. 사피엔스가 다른 사피엔스에게 인류의 종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인가? 오늘날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던져주는 책,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5)이다.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가 전개됨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더 행복한지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보는 연구를 하고 있다. 『사피엔스』와 더불어 인류의 미래를 탐색한 『호모 데우스』, 현재의 인류를 살펴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저서가 있다.
이 책 『사피엔스』의 주요 키워드는 목차에 나와 있듯이, 제1부 인지혁명, 제2부 농업혁명, 제3부 인류의 통합, 제4부 과학혁명이다. 하라리에 따르면 우리 종(사피엔스)의 역사는 세 가지 혁명을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류를 변화시킨 첫 혁명인 인지혁명과 제국을 출현시키고 교역망을 확대했으며 돈이나 종교 같은 상상의 질서를 낳은 농업혁명을 거쳤다. 그리고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비롯한 생명공학 혁명까지 우리가 위험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된 과학혁명이 그것이다.
7만년 전 우리 인간 조상들은 하찮은 종족이었다. 모든 동물들과 같이 아프리카의 한 구역에서 그들의 일에만 신경을 썼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인간은 모든 대륙에 퍼져 살았다. 인간의 행동들이 동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유발 하라리는 인간의 성공에 대한 놀라운 이유들을 제시한다.
먼저 하라리는 인간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수가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모든 동물들 중에서 우리만이 이런 방법으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이 행성의 모든 동물들 중 우리만이 소설과 허구적 이야기를 창작하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현실과 가상의 현실을 창조하려고 언어를 사용한다. 인간만이 이런 이야기를 믿고 함께 협동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지배할 수 있고, 반면 침팬지들은 동물원에 갇혀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허구적 이야기를 믿는 한, 모든 이들이 같은 규율, 가치관을 따르고 지킨다. 실제로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 중 돈이 가장 성공적인 사례이다. 모두가 신, 인권, 민족주의 등을 믿진 않는다. 그러나 모두가 돈과 달러는 신뢰한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p.53) "인류가 공유하는 상상 밖에서는 우주의 신도, 국가도, 돈도, 인권도, 법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p.54) 사피엔스가 믿으면서 거대한 공동 행동을 했다는 저자의 기발한 착안이 돋보인다. 그런 능력 덕분에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른 인간 종을 물리치고 지구 생태계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발상이 새롭다.
저자는 이 책 후기 『신이 된 동물 : 호모 데우스』에서 과학혁명이 불러올 인류의 미래에 대해 경고하고, 사피엔스와 지구 생태계의 생존을 염려한다. “생명공학적 신인류, 영원히 살 수 있는 사이보그로 대체될 것이다. 환경파괴로 인해 스스로 멸망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말이다.”(p592) 과학혁명이 최후의 혁명이 되어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종식하고 호모 데우스의 역사를 열 것이라 암시한다. “우리의 기술은 발전해왔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함한 존재가 또 있을까?” (p.588) 저자는 인간과 이웃 생명체의 미래에 대해 우리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를 고민한다.
유발 하라리는 어떤 강연에서 말한다. “우리 인간은 이중적 현실(객관적과 허구적 현실) 속에서 살기에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다.” 우리 인간은 강, 사자, 나무, 코끼리 같은 객관적 현실뿐만 아니라 국가, 신, 돈, 그리고 기업체 같은 허구적인 실체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놀라운 점은 이 허구적 사실들이 더욱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지닌 것은 이런 허구적인 실체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는 책, 두께는 있지만 한 부분 한 부분이 소중한 이야기로 다가오는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인간이라는 종(사피엔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성찰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