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자유와 가치
『멋진 신세계』(소담출판사, 2015)는 영국의 소설가, 시인, 비평가인 올더스 헉슬리의 대표작으로 디스토피아 세계를 다룬 고전 소설이다. 원래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Tempest, 폭풍우』의 제 5막 제1장에서 미란다가 오랜만에 사람을 보자 반가워 독백하는 말(놀라워라, 멋지다!) 가운데서 따온 말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세계국(가)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로 누구나 늙지 않고 죽을 때까지 젊음을 유지한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지만 철저한 계급사회로,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외모, 성격, 취향까지 모두 계급에 걸맞게 운명이 결정된다. 국가를 지배하는 것은 10명의 통제관으로 법을 만들고, 체제를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은 섬으로 유배를 보낸다.
멋진 신세계에서 신(새로운) 개념은 [아담과 이브]에서 남자에게는 노동의 고통을,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을 안겨준다는 성서에서 유래한다. 이에 헉슬리는 출산 고통이 없이 유리병 속에서 태아 공동 생산하고,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해방하기 위해 ‘소마’라는 정신안정제를 투입한다. ‘소마’란 뜻은 원래 고대 그리스 플라톤이 사용한 “육신, 몸”의 뜻인데 헉슬리는 마약제로 사용한다.
세상의 모든 결핍이 제거되면 행복한 세상이 올까? 야만인 존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인간성이 결여된 사외보다 불완전하더라도 각자 자유와 특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p362)
소설은 인간의 이중적 태도를 보여준다. 버나드 마르크스는 신세계의 체제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자신의 개성을 찾기 위해 국가가 금지하는 행동을 한다.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린다와 존의 정체를 알게 된 후에는 그들을 데리고 돌아와 국장의 옷을 벗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치 조지오웰의 ‘1984’의 주인공인 원스턴 스미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그 이후에 그의 행보는 달라진다. 과거에 자신이 비판했던 그 체제의 수혜자가 되어 안주한다.
인간의 삶에서 가치란 무엇인가. 자기희생, 국가에 충성, 인권을 위한 운동 등 얼마든지 좋은 가치들이 많다. 우아한 신세계의 행복지상주의는 우리의 가치를 너무 단선적으로 평준화한다. 야만인 존은 이렇게 말한다. "가치란 어느 특정한 의지에 따라 좌우되지는 않아요.“ ,”그것은 쟁취하려는 자에게 그 자체로서 소중할 뿐 아니라, 그의 판단과 권위에 따라서도 그 가치가 좌우됩니다.“(p357)
소설은 인간의 행복과 자유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문명화된 신세계 속에서 ‘소마’에 의해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 올더스 헉슬리는 독자에게 그런 유토피아가 가능한 것인가를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욕망은 오롯이 나의 것인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와 ‘자유와 행복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