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의미 있는 삶
발자크의 작품에서는 결코 세상을 아름답거나 낭만적인 모습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추한 현실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 라스티냐크가 “이 세상을 사람이 한 발만 담그면 목까지 빠져 버리는 진흙탕의 바다, 세상에는 비속한 범죄들만 저질러진다! ”(p.357)라고 생각한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너무나 유명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이동렬 옮김, 을유문화사, 2010)을 다시 읽어본다.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보케르 하숙집과 하숙인들의 묘사는 그림이나 사진을 보는 듯한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발자크는 모든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이 살아온 배경, 현재 처한 상황, 심지어 건강 상태와 주거 환경까지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사실주의 작가라 일컬어 지기도 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1799년 프랑스 투르 시에서 태어났다.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문학의 길로 들어서 독서와 습작에 전념한다. 30세 때 역사 소설 『올빼미당』을 발표했고, 인간 삶을 그린 작품집 『인간 희극』을 발표했다. 저서로는 『외제니 그랑데』, 『절대의 탐구』, 『사라진 환상』등이 있다.
시대적 상황은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면서 성공과 파멸의 모험이 펼쳐지던 시기이다. “우리는 루이16세에게 사건이 닥치는 것도 보았고, 나폴레옹 황제가 무너지는 것도 보았으며, 황제가 되돌아왔다가 다시 무너지는 것도 보았지.” (P309) 라고 말하는 보케르 부인의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자유 사상과 함께 근대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계급 상승 욕구가 충만하던 그 사회의 젊은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야망을 키우고 꿈과 환상을 좇는 시기이다.
무엇보다 빗나간 자식 사랑이 병적이다할 만한 부성애를 들수 있다. 무분별한 자식 사랑에 대한 일종의 경종을 울린다. 황금만능의 19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두 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오직 돈이면 행복할 줄 믿었는데 그 결과는 비참한 최후로 끝난다. “내가 내 재산을 간직하고 있었더라면, 내가 재산을 그 애들에게 주지 않았더라면, 그 애들은 여기 와서 키스로 내 두 뺨을 핥을 텐데!” (p.370) 물질주의 가치만을 추구하는 성찰 없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과연 올바른가 생각게 만든다. 황금만능주의가 모든 가치를 지배하는 왕정복고 시대의 프랑스 사회에서 자식의 행복을 위해 다 희생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얼마전 같이 수업을 듣는 어머니가 들려준 말이 떠오른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아들에게 매달 몇 백만원씩 생활비, 학원비를 보내주고 나니, 먹고 싶은 고기는 엄두도 못내고 초라하게 몇 가지 반찬으로 식사를 하니 참 서글프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자식에 대한 애정이 고리오 영감 그 시대만의 전유물이 아닌 현재도 진행형이란 생각이 들어 애잔하다.
소설은 하나의 중심인물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는 구조를 갖지는 않는다. 발자크는 보트랭을 통해 당시 부르조아 사회에 대한 냉소적이며,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내기도 한다.“당신들이 우리보다 훌륭하오? 썩은 사회의 무기력한 분자들인 당신네들 마음속의 치욕은 우리네 어깨에 찍힌 치욕보다 더 심한 것이오. 당신들 중 최상의 인간도 나의 이 말을 반박하지는 못할 거요.” (p.285)라고 보트랭이 부르짖는다. 저자는 보트랭을 통해 우리들은 작품 속 등장인물보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낫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자크는 보트랭이란 악인을 등장시켜 그를 통해 우리들이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게 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은 부모이든, 자식이든, 우리 모두에게 자신의 삶을 한번쯤 뒤돌아 보게 하는 작품이다.
특히 라스티냐크의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발자크가 자신의 삶을 투영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는 법조인의 길 대신에 부유한 귀족 부인의 애인이 되는 방법을 택한다. 당시 파리 상류층 사회에 만연해 있던 풍속이다.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의 죽음과 드 뉘싱겐 부인의 관계 속에서 시골 사람의 껍질을 벗어 버리고 멋진 미래를 굽어볼 위치에 서서히 자리 잡게 된다. “이제 우리 둘의 대결이다!” (p.404) 라스티냐크의 두 눈은 그가 뚫고 들어가기를 원했던 아름다운 사교계가 거주하는 그곳에 거의 고정된다. 출세지향적인 삶을 살겠다는 선전포고인가?
『고리오 영감』은 물질적 가치가 팽배한 황금만능의 병리적 현대 사회를 고발하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이 소설을 읽으면 나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바라보는 기회를 준다. 그만큼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삶을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를 그만큼 건강하게 만든다. 이 소설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