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비극적인 생을 살아가는 사회상
대구 김종협
1970년에 솔제니친이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된다. 스웨덴 한림원은 “솔제니친은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추구하면서 도덕과 정의의 힘을 갖춘 작가다.”라고 그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이영의 옮김, 민음사, 1998)는 발표 되자마자 러시아의 문단 내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은 단순하고 소박한 언어로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부조리한 사회적 상황에서 기본적인 자유조차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적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솔제니친은 1918년 러시아 카프카스 카슬로보츠크 시에서 태어났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러시아의 포병 장교로 자원 입대한다. 1945년 포병 대위로 복무 중 친구에게 보낸, 스탈린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가 발각된다. 이로 인해 8년 강제 노동형과 3년의 유형을 선고받는다. 이 수용소 생활과 병원 생활의 경험이 그의 작품에서 주요 모티브가 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암 병동』, 『1914년 8월』, 『수용소 군도』, 『제1 영역 안에서』 등이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주인공 슈호프가 견뎌내야 했던 3653일간 유형생활 중 하루를 묘사한 소설이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그리 많이 배우지도, 생각이 깊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이다. 농부였던 슈호프는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포로가 된다. 전쟁이 끝나고 풀려났지만 그는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강제노동수용소에 유배된다. 수용소에서 주인공은 지배 조직에 의해 억압되고, 자존감을 잃어버린 채 본능에 의존해 연명해 나간다.
먼저 저자는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이들의 비참하고 비극적인 일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 매일매일 그들이 살아내는 반복되는 단순한 일상, 먹는 것, 작업 배당, 뇌물, 속임수 등의 묘사는 그러한 인물들의 개인적 비극을 대변한다.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개인적 비극을 통해서 그 당시의 정치조직인 스탈린의 허상이 벗겨지기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억압하는 지배조직에 대한 고발이며, 약자 개인 개인에 대한 숭고한 인간애를 보여준다. 즉 약자의 부당한 운명에 대한 인간애적인 동정을 강조한다. 이는 반대로 정치적인 지배권력에 대한 죄상을 예리하게 폭로하고 대비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저자는 스탈린의 정치적 허울과 억울한 수많은 약자를 무자비하게 억압하고, 비극으로 몰아넣은 전형적인 예를 이 소설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약자는 아무 이유도 없이, 지배층의 권력 남용에 의해 흔적도 없이, 가혹한 운명 속에서 비극적인 생을 살아가는 사회상을 보여준다. “ 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p.157)
또한 솔제니친은 비극적인 운명 속에서, 사실적인 묘사와 기막힌 반어법을 통한 지극히 평범한 하루를 지루하지 않게 신명나게 그려낸다. 주인공 슈호프는 원칙에 따라 소박하게 살면서 자기 분수와 품격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이다. 수용소에서 보낸 삼천육백오십삼 일 동안 그가 한 일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투쟁뿐이다. 그는 절대 꾀병을 부리지 않는다. 다른 수형자를 밀고하거나,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도 않는다. 작업을 할 때는 성의 있게,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p.208) 수용소에서 끈질긴 생존 투쟁을 벌이는 속에서도 한 입 더 먹게 되었다고 행복을 느끼다니! 수용소 생활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우리가 그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용소의 일상생활과 등장인물의 성격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특이하다. 마치 수용소 풍경과 죄수들의 일상을 찍은 영상을 보는 느낌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수용소의 하루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생존을 위해 고통스럽고 비인간적인 노동과 억압을 견뎌야 했던 소련 사회(스탈린 지배조직)의 하루일 것이다.
책의 두께는 짧고, 서술은 소박하고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시대적 상황의 어려움 속에서 주인공 슈호프가 헤쳐나가는 마음 자세는 경건함과 동시에 위대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 작품은 솔제니친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경험에서 느껴지는 시대 상황과 인간의 내면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한 책이 또 있을까 싶다. 선정적인 폭로의 글이 아니라 말을 아끼고 소박한 내용 속에서도 그 깊은 의미을 짐작케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