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메타포, 세상을 읽는 눈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실존했던 칠레의 시인이자 정치가이다. 정치적인 색채를 띤 시를 비롯해 아름다운 사랑과 일상을 노래한 다양한 시를 발표했다.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칠레의 민중 시인으로 이름이 높다. 네루다라는 인물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쓴 소설이 있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2004)가 그것이다. 스카르메타는 네루다와 이슬라 네그라(‘검은 섬’ 이란 뜻)의 시적인 향기에 흠뻑 취해 이 소설을 집필한다. 1994년에 『일 포스티노』란 영화로도 만들어져 외국어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다.
소설은 1970년대 초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라는 산티아고에서 12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작은 어촌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시인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인 젊은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가 있다. 아름다운 소녀 베아트리스를 보고 첫눈에 반한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소녀를 위한 시를 써달라고 조른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메타포’를 가르쳐준다. 메타포(metaphor)는 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간접적이며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마리오는 네루다가 프랑스 대사로 떠난 뒤에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간다.
글과 말을 겨우 아는 민중 마리오가 시인 네루다를 만나 문학감수성, 시대의식에 눈 떠가는 과정이 의미심장하다. 네루다를 통해 메타포를 배우고 사랑의 말문이 열리고 세계를 읽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마리오는 시상으로 가득찬 느낌으로 베아트리스에게 물 흐르듯 술술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의 미소가 얼굴에 나비처럼 번지네요. 당신의 웃음은 한 떨기 장미고 영글어 터진 창이고 부서지는 물이에요.” (p.62) 이 불꽃놀이 같은 말의 힘을 스카르메타는 예찬한다. 그 말들은 시가 되고 문학이 되어 우리의 가슴과 영혼에 사랑과 생명을 만든다고 강조한다. 오랜 착취에 길들여져 정당한 항의 한번 제대로 못하는 민초들도 시를 읽고 권리를 주장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심정을 읽어낼 수 있다. 네루다의 시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칠레인 전체의 것, 일상의 삶 그 자체가 되기를 바란다.
소설 뒷부분에 가서는 시가 사라진 세계를 한탄한다. 파리에서 큰 병을 얻은 네루다는 다시 바닷가 마을로 돌아온다. 바로 그 때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시내 곳곳을 총칼로 점령한다. 1973년 9월 11일 칠레는 아옌데의 민주 정부를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16년에 걸친 군사 독재를 행사한다. 저자는 표현의 자유가 사라져 버린 세계가 얼마나 어두운 지를 보여준다. “아름다움과 무(無)가 교차된 검은 물, 쿠데타 발발로 두 눈이 가려지고 손목마다 피를 흘리고 있을 시체들 아래로도 그 검은 물이 네루다의 입에서 시 한 수가 흘러나오게 했다.” (p.157~158) 사상의 자유, 그리고 시와 문학이 사라져 버린 세계가 얼마나 음울하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실제 저자가 직면하고 있던 조국의 현실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잔잔하면서 진한 감동 외에도 재치 넘치는 묘사와 대화가 독특하다. 특히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가 그립다’는 네루다의 부탁에 따라 마리오가 채집하는 녹음 과정이 이채롭다. 군데 군데 해학적인 성 묘사도 소설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소설 속에서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메타포를 가르치고 사랑의 언어를 가르쳤듯이 우리의 마음속에도 시인의 영감과 생명의 언어들이 싹틀 수 있기를 바래본다. 이 세상을 읽는 눈을 가지고 세상의 억압과 싸우는 법이 무엇인지, 새로운 삶을 향해 가는 길이 무엇인지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