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룬다티 로이의 <지복의 성자>
지복의 성자
대구 김종협
마치 모든 유형의 인도인들이 들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무수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이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장편소설 『지복의 성자』 (민승남 옮김, 문학동네, 2020) 이다. 일상이 갈등과 억압에 놓인 인도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혹독한 인도인의 삶을 내부자의 시각으로 형성화하며 공감하고 어루만진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이후 카슈미르에서 끊임없이 계속된 분쟁과 내전이 일어난다. 2002년 구자라트에서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벌어진 대량 학살 등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썼다. 계급, 종교, 파벌 등 인간이 만들어놓은 족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지를 과감히 보여준다.
아룬다티 로이는 1961년 인도의 메갈라야 실롱에서 태어났다. 1977년 델리로 이주해 건축설계학교에 입학한다. 졸업 후 영화 『매시 사히브』에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이후 영화 『애니』, 『전기 달』 등을 남편과 공동 작업하고, 영화 비평 『인도의 대단한 강간 트릭』을 발표한다.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수상한다. 그 외 저서로 『상상력의 종말』, 『생존의 비용』, 『권력의 정치학』 등이 있다.
소설은 1950년대 중반 인도 델리에서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한꺼번에 지니고 태어난 안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히즈라’는 힌두어로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제3의 성을 의미한다. 여성의 옷을 입은 히즈라에 매료된 안줌은 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인 콰브가로 들어간다.
후반부는 여성인 틸로와 세 남자 무사, 비플랍, 나가로 이루어진 동년배 친구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1980년대 중반 대학에서 연극을 함께 하며 만난 이들이 30년에 걸쳐 이어지는 삶이 그려진다. 그들의 사랑과 갈등이 인도의 비극적인 현대사와 맞물려 장대하게 펼쳐진다.
먼저 저자는 안줌의 삶을 통해 인간에 대한 희망과 사랑을 말하고자 한다. ‘꿈의 집’을 뜻하는 콰브가는 안줌이 억눌렸던 여성성을 마음껏 펼칠 수 았는 해방과 자아실현의 장이 된다. 삼십 년 넘게 살아온 콰브가를 떠나 홀로 공동묘지로 들어간다. 안줌의 공동묘지 게스트하우스는 세상에서 밀려나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사람들에게 따듯한 보금자리가 되어준다. 즉 산 사람들뿐 아니라 죽은 사람들가지 품게 된다. “그들은 마치 나무나 어른 코끼리의 대형처럼 미스 제빈 2세를 둘러싸고 간격을 좁혀, 미스 제빈 2세가 자신의 생물학적 어머니와는 달리 보호와 사랑을 받으며 자랄 수 있는 물샐틈없는 요새를 만들었다.” (P.557) 학교와 수영장, 동물원까지 갖춘 공동묘지에 자리한 잔나트 게스트하우그 겸 장례식장은 자유와 사랑이 구현된 지복의 성자의 작은 파라다이스이다. 안줌을 통해 저자는 경계와 차별을 넘는 화해와 사랑의 가능성으로 변모하는 삶을 긍정하기를 기원한다. 상호 이해, 사랑이라는 궁극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또 소설은 인도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고통받고 상처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다룬다. 1984년 인디라 간디 총리가 암살된 후 델리에서 수천명의 시크교도가 폭도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2002년에는 구자라트에서 자행된 힌두교도에 의한 이슬람교도 학살이 일어난다. 카슈미르 지역 분쟁의 한복판을 여성인 틸로와 세 남자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얽혀있다. ‘암리크 싱’의 죽음을 두고 무사는 과거의 친구 비플랍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 언젠가는 카슈미르도 그런 식으로 인도를 자폭하게 만들 거야. (···) 너희는 우리를 파괴하고 있는 게 아냐. 일으켜세우고 있는 거지. 너희가 파괴하고 있는 건 너희들 자신이야.” (P.567) 우리는 욕망의 복잡성과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전 세계가 이슬람주의자가 될 수는 없고,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저자는 강조한다. 문화, 역사, 사회적으로 인도 사회는 복잡하다. 하나의 관점이 승리하는 세상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그래서 우리는 현명해져야 한다. 이런 갈등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기에,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복의 성자』는 정치와 사회, 종교 분쟁, 빈부격차 등 인도인의 이야기이다. 소설은 모성의 품으로 끌어안은 유연한 젠더 의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종교적 분열, 구시대적인 카스트 제도, 힌두교와 이스람교도 간의 무자비한 종교 분쟁 등 그야말로 인도의 산 역사 이야기이다. 인도인들은 17세기 아르메니아 상인이자 시인인 사르마드를 ‘지복의 성자’라 추앙한다. 그 이유는 굴종하지 않는 자유와 사랑을 추구한 그의 정신을 기려 그렇게 충심으로 섬긴다. 이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안줌은 어떻게 지복의 성자로 거듭나는 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