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열정
대구 김종협
“본인 의지가 아니라 제도나 조직에 의해 만들어진 관성은 때때로 우리를 옭아맨다.” 시인 오은씨가 어떤 신문에서 쓴 글이다. 관성에 젖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으로부터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세상은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너무 잔인하고 냉정하다. 잃었던 희망, 열정, 삶을 되살리며 어떻게 살지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이 있다.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 원윤수, 임미경 옮김, 민음사, 2001)이 그것이다.
스탕달은 1783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태어났다.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으며, 외할아버지인 앙리 가뇽으로부터 문학에 대한 애착과 계몽사상을 물려받았다. 1800년 나폴레옹 군대를 따라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러시아, 프러시아 원정에도 따라 다녔다. 1814년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로는 7년간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음악, 그림, 연극을 즐겼다. 저서로는 『연애론』, 『라신느와 셰익스피어』, 『아르망스』, 『로마 산책』, 『적과 흑』, 『앙리 브륄라르의 생애』 등 다수가 있다.
『파르마의 수도원』에서 먼저 다가오는 점은 주인공 파브리스가 간직하고 있는 순수성에 매료된다. 블라네스 신부는 파브리스에게 말한다. “위선자만 되지 않는다면 너는 아마 가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을 거야” (p. 35 1권) 천진난만한 파브리스는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일에는 대담하고도 열정적이었다. 모스카 백작은 “ 그 청년의 미소는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 미소는 갓 피어난 젊음의 순수한 행복을 보여주고 또 그런 행복을 낳게 한다.” (p.210 1권)며 주인공의 매력적인 모습에 놀란다. 스탕달은 주인공 파브리스를 통해 이 세상에서 진실한 것은 오직 사랑과 사랑이 가져다 주는 행복뿐이라고 강조한다. 파브리스의 얼굴을 지켜보면, 생각이 필요한 어떤 자잘한 일에 부딪히면 눈은 생기를 띠어 사람을 놀라게 하고, 모두들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순진함과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인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읽다보면 영상을 보듯 표현한 배경 묘사가 독특하다. “작은 길을 따라 아담한 숲을 통과할 때마다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이 별빛 총총한 데다 엷은 안개까지 감도는 하늘에 잎사귀들의 검은 윤곽을 그려냈다. 호수의 물결과 밤하늘은 깊은 고요 속에 잠들어 파브리스는 이 숭고한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겼다.” (p.220 1권) 이 아름다운 표현에 빠지다 보면 소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잃어버릴 만큼 감동적이다.
스탕달이 『파르마의 수도원』에서 주장하는 것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열정을 강조한다. 어떠한 사회적 제약이나 윤리 도덕적 구속도 없이 본능이 시키는 대로 삶의 순간을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열적인 삶(열정)인 것이다. 이는 세속적인 이해 타산과는 거리가 먼 자발적이고 순수함에서 비롯되는 성격인 것이다. 주인공 파브리스는 사랑하는 여인을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감옥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백작이 관할하고 있는 시립감옥에 자수하는 대신 그는 성채 감옥의 예전에 있던 방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클렐리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몹시도 행복해하면서…….” (p.270 2권) 주인공의 성격은 세속적 그늘 없는 순수한 열정 그 자체로서, 저자는 이런 것이야말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열정이라고 피력한다. 순수하고 자발적인 욕망, 천진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 열정적이기 때문에 고상한 것들이 『파르마의 수도원』에는 중요한 이야기로 등장한다. 소설의 구성이 긴밀하다거나 사건 진행이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순수한 열정과 자연스러움이 행복의 세계인 꿈 속으로 하나하나 펼쳐보이면서 영상으로 다가온다. 삶은 완성되는 결말이 아니기에 그저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탕달은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2차 원정군에 참가하였고, 나폴레옹을 따라 마렝고 전투에 참전하고 러시아 원정에도 직접 나섰다. 소설에도 ‘워털루 전투’ 이야기가 『파르마의 수도원』 전반부에 나온다. 저자는 당대 사회와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도 많이 등장시킨다. 특히 파르마 공국의 정치적 거래와 궁정에서의 권력 다툼 등이 그러하다. “절대 권력이란 편리한 점이 있어서, 국민들의 눈앞이 모든 것을 신성화시켜 놓지요.” (p.161 1권) 공화정 시절을 그리워하는 스탕달은 전제 군주제의 모순을 유쾌하게 비판한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스탕달이 사회에 대해 느꼈던 이질감, 그 세계에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의식은 스스로를 각성하게 만든 것일까? 이 책은 세속적인 성공과는 무관한 행복을 그려보임으로써 삶의 진정한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 대충 살 수는 없는 요즘 어떻게 해야 갈피를 잡을 수 있을지 스탕달을 통해 삶과 열정을 만나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