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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않았다>

글 쓰기 2024. 4. 21.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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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공감

 

 

 

책의 앞표지 제목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로 적혀 있다. 하지만 영문판에는 ‘The Unwomanly Face Of War - An Oral History Of Women In World War '로 되어 있어 작가의 의도에 좀 더 다가가는 제목이라 생각된다. 책은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않았다(문학동네, 2015)이다. 목소리 소설로 강한 매력과 영혼의 다큐멘터리의 산문으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다 읽고 나서는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지만 인간으로서 사람에게 던져주는 슬픔과 고통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남자인 나로서는 읽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이 책 속의 목소리가 나에게 많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전쟁에 대한 모든 것을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알고 있다. 우리는 남자가 이야기하는 군대, 여자의 침묵 속에서 남자들의 언어로 군대, 전쟁을 이해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남자들이 말하는 내가 군대에 있었을 때는 말이야.....”가 아니다. 어린 나이에 직접 전쟁에 참전하고 살아남은 여성 200여명의 목소리, 침묵을 강요당했던 그녀들의 눈물과 절규의 진실이 담긴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치가 떨리도록 극악하고 참혹한 진실이 숨어 있다.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는 여자들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사연이 있다. 전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젊은 날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는 것이다. "지금 이건 내가 이야기하는 게 아니야. 내 안의 고통이 이야기하는 거지.....“(p. 446)

 

 

16세에서 18세 사이의 젊은 나이로 전선으로 향하는 여성들의 공통점은 어느 누구 하나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전선으로 가겠다고 지원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전선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특히 최전방으로 보내 달라는 이야기와 화물 기차를 타고 최전선으로 가는 것을 희망과 기대로 가득찬 어린 여성들 이야기가 독특하다. 대부분의 나이 어린 여성은 군정치위원회를 직접 찾아가고, 군대에 나를 받아 달라는 편지를 쓰고 부탁하고 사정을 하는 행동을 한다.

 

 

이 책속의 모든 목소리가 그렇지만, 인터뷰에 응한 200여명의 여성들의 공통된 감정은 이렇다. 내 기억 속에서 전쟁은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야. 그곳에서 행복했으니까..... 다만 부탁인데, 내 성은 밝히지 말아줘. 내 딸을 위해서....”(p.413) 상징적인 의미가 말에 내포해 있어서, 마음이 몹시 사무쳤고 또 깊은 인상을 준다. 16살 어린 나이에 조국을 위해 기꺼이 참전하고 거기서 젊은 삶을 바쳤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현실은 사회에서의 편견과 진실을 외면한 것에 대해 아쉬움으로 본인 성과 딸에게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며칠 전 한 신문에 제1면을 장식한 사진이 있었다. 벨라루스에서 대선 이후 정권의 투표 부정과 개표 조작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었다. 수도 민스크에서 여성 활동가들이 경찰의 체포에 인간 사슬을 만들어 저항 시위하는 사진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벨라루스의 여성들의 참여 정신과 기꺼이 동참하는 모습이 강력하게 다가왔다.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를 작품 속에 그려 낸다. 굳이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이라서가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진실과 여성들의 젊은날의 삶을 - 편집자나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 세상에 발표한다. 작가로서의 위대한 사명감이 느껴지기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최상의 존경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감정의 역사를 쓴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역사가다.” (p. 25)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력(inability to think), 그것이 바로 악()이다라고 말하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책의 마지막 부분이 생각난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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