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의 <면도날>
진정한 선
『면도날』 (안진환 옮김,민음사,2009)은 1938년 서머싯 몸이 실제 인도 여행에서의 경험이 아로새겨진 그의 70세 때의 작품이다. 『면도날 The Razor's Edge』은 장편소설로 전쟁으로 친구를 잃고, 인생의 의의에 회의를 느껴 연인도 직업도 버리고 정처 없이 구도의 여행에 오르는 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1946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지기도 한다. 읽으면 쉽고 부드러운 문체와 작품 인물들의 날카로운 이야기와 기지 넘치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서머싯 몸은 187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성 토마스 병원 부속 의과 대학에 입학하지만, 의사보다 작가가 될 꿈을 품고 1897년 첫 소설 『램버스의 라이자』를 발표한다. 이후 학업을 포기하고 소설과 희곡 집필에 몰두해, 1908년 그의 희곡 네 편이 런던 웨스트앤드 극장에서 상연되면서 극작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1919년 화가 폴 고갱의 전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 『달과 6펜스』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크게 주목받는다. 저서로 『인간의 굴레』, 『나뭇잎의 떨림』, 『과자와 맥주』, 『작가 수첩』 등이 있다.
주인공 래리는 전쟁 중 동료의 희생으로 인해 목숨을 건진다. 이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부잣집 애인 이사벨도 마다하고 프랑스, 독일,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날아가서 고된 노동을 하며 삶의 참된 가치에 대해 고뇌한다. 그리고는 인도로 날아가서 고행길에 오른다. 그리고 마침내 보란 듯이 다시 태어나 선을 베풀기 위해 돌아온다. 깊은 고뇌와 진지함이 묻어나는 다음의 래리 이야기에서 작가 서머싯 몸은 작품의 주제를 암시 하는게 아닐까?
“나도 남들 가는 길을 가면서, 그럭저럭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야. 하지만 쌩쌩하던 녀석이 죽은 모습으로 누워 있던 게 떠올라. 그러면 모든 게 얼마나 잔인하고, 얼마나 무의미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p84)
주인공 래리는 신과 삶의 의미에 대해 탐구하여 답을 찾겠다는 의도를 약혼녀 이사벨에게 밝히며, 논쟁을 하지만 견해 차이로 결국은 파혼을 하게 된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어.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정신세계가 나를 부르고 있어.”
“거기서 뭘 찾고 싶은데?”
“내 의문에 대한 대답들.”
“철부지 소리처럼 들려.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해”
“래리 난 제대로 살고 싶어.” (p116~122)
각자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사벨의 욕심 내지 이기심에 좀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뒤에 가서 화자인 몸 선생과 이사벨 대화에서도 그녀의 본심이 나타난다.
“단지 래리의 앞길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그를 놓아 줬으니까요.”
“거짓말은 그만두라고, 이사벨. 네가 래리를 포기한 건 다이아몬드와 모피 코트 때문이었잖아.” (p343)
이 소설 후반부에는 절정에 달하는 화자인 나와 래리의 인도 고행에 대한 대화가 나온다. 즉 절대자의 본질, 영혼의 윤회, 신 등에 대하여 많은 대화를 나눈다. “저는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상이 자기완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렇다면 그것을 추구하려 노력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요?”(p464)
1946년 영화 작품의 끝 장면에서도 작가로 등장하는 배우가 말한다. “래리는 우리가 원하고 소수만이 가지고 있는 걸 찾았네. 래리를 알게 되는 사람들은 더욱 현명하고, 더욱 숭고하며 더욱 선량해질 수 있네. 이사벨, 결국 선이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지. 래리는 그걸 가지고 있어.“ 소설에서도 화자인 작가는 아래와 같이 회상 하면서 끝을 맺는다. “그는 선택한 삶의 행로를 따르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는 데 만족할 것이다.”(p514)
이 소설은 면도날의 칼날처럼 구원의 길이 어렵다는 우파니샤드 명언같이, 인생의 정답은 없으나, 옳은 목표를 세우고 진정한 선은 자신 안에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작품이다. 한번쯤 ‘왜 사는지?’에 대한 자문(自問)을 던져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에 나오는 문구가 생각난다. “다른 이가 먼저 살아가고 먼저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이 가르치는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