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럿 브론테의<제인 에어>
주체적인 삶
대구 김종협
“온 세상이 너를 싫어하고 너를 사악하게 여긴다 해도 네 양심에 거리낄 게 없고 죄가 없다면 네 곁에는 반드시 친구가 있을거야.” 네플릭스 영화 <빨강 머리 앤>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대사이다. 앤이 열차 안에서 스펜서 부인에게 “제인 에어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제인 에어를 아시나요?”라고 묻는다. 이는 앤의 과거의 생활이 ‘제인 에어’의 고난과 역경을 접하면서 깊이 각인되었음을 의미한다 하겠다. 앤이 극찬한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Ⅰ, Ⅱ』 (우종호 옮김, 민음사, 2004)를 읽어본다.
샬럿 브론테는 1816년 영국 요크셔 주의 손턴에서 태어났다. 1825년부터 5년 동안 후일 『폭풍의 언덕』을 쓰게 될 동생 에밀리와 함께 집에서 독학으로 공부를 했다. 1831년 로헤드에 있는 사립 기숙학교에 들어가, 그곳에서 3년간 교사 생활을 한다. 1847년 『제인 에어』를 출간 커다란 호응을 얻으며 그녀에게 작가로서의 성공을 가져다 준다. 작품으로 브론테 자매의 공동 시집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과 소설 『교수』, 『셜리』, 『빌레트』등이 있다.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영국의 영광 이면에 사회하층민의 잔혹한 착취를 숨기고 있던 빅토리아 시대(1837 ~ 1901)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전통적인 계급사회이자 가부장제 사회이다. 빅토리아 시대는 당대의 여성들에게 가정의 영역에서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며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하였고,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의 억압과 차별 속에서 종속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저자는 먼저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여주인공 제인을 통해 대변한다. 당대의 성적, 계급적 억압과 차별에 분노하며 전통과 인습에 반항하는 주제적인 여성상을 그려낸다. 제인은 어린 시절부터 성적, 계급적 차별을 겪으며 성장하지만, 사회적 억압에 직면할 때마다 그녀만의 장점인 이성과 분별력을 발휘하여 어려움을 극복한다. 이런 바탕에는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한 점이 많이 작용한다. 그리고 로우드 학교에서의 신념을 갖고 충실히 생활한 덕분이기도 하다. “나는 열을 내었고 성공은 노력에 비례하였다. 기억력도 훈련 덕분에 좋아졌고 연습을 거듭함에 따라 이해력도 좋아졌다. 몇 주일 뒤에 나는 상급반으로 진급했고 프랑스어와 그림 공부 시작하는 것도 허용받았다.”(p.131) 이는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등장 인물과 격의 없는 대화를 이끌어 내는 바탕으로, 제인이 사리에 밝고 나무랄 데 없이 얌전하고 지각 있는 사람으로 처신하게 한다. 자기 자신을 올바로 평가한다고나 할까?
또한 소설은 주인공 제인 에어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면을 보여준다. 제인은 사회적 억압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지 않는 당당한 면모를 드러낸다. 힘들고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강인한 정신과 이성적 판단으로 정체성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지킨다. 제인은 로우드 학교에서 8년간 머문 후, 자유를 갈망하면서 변화와 자극을 달라고 기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 사람들 틈에 끼어 새 집에서 새 직업을.” (p.154 1권) 직접 광고문을 내고 가정교사로 채용된다. 로체스터의 청혼 사건으로, 제인은 로체스터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지만 그의 정부(情婦)로 살 수 없다며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간다. “로체스터님, 저는 당신의 것이 되지 않겠어요.” (p.157 2권) 이처럼 제인은 가혹한 운명과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진정한 사랑을 지켜내는 삶을 추구한다. 불후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제인의 모습에 매료된다.
이 소설은 2권으로 방대한 분량이지만, 샬럿 브론테의 뛰어난 대사와 문체에 빠져들다보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할 것이다. 고전이 이래서 오늘날까지 그 가치를 인정받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시대상황이 다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제인 에어처럼 삶을 주체적이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고민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