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가치 있는 일
버지니아 울프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녀의 책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새로운 기법인 의식의 흐름를 소설에 도입하고 완성시킨 작가이다.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은 울프 문학을 대변하지만, 그 이면의 울프 문학의 세계를 접해보고자 이 책을 든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사고의 궤적을 여러분 앞에 될 수 있는 대로 충실하고 자유롭게 개진할 것이다.” (p.11)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글을 쓴 『자기만의 방』에는 이전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 평가와 여성의 창조성, 정체성을 살펴보는 울프의 세계가 새롭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이미애 옮김, 민음사,2016)은 95년이 지난 지금도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1882년 영국 런던의 하이드 파크 게이트에서 태어났다. 문예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성장한다. 오빠와 여러 동료들과 블룸즈버리라는 예술가 단체를 결성한다. 이 그룹에서 비공식적인 토론회를 통해 서로의 사상을 공유한다. 1907년 <타임스>문예 부록에 서평을 싣기 시작했으며, 이후 문예평론을 발표해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 받는다. 저서로는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방대하고 깊이 있는 독서 능력에 감탄한다. 버지니아 집안은 소설가 헨리 제임스, 조지 메러디스, 윌리엄 새커리 등과 친분이 두터운 지적 동아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런 문화적인 환경에서 울프는 최고의 지적, 예술적 혜택을 누리며 성장한다. 고대 그리스부터 당시까지 여성의 글쓰기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그리스 여성 시인 사포에 대한 언급을 시작으로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등의 여성작가들에 대한 평론이 깊이 있게 다루어 진다. 여성이 처했던 구체적인 상황을 알아보고자 도서관에서 여성에 관한 기록을 찾아내 사유한다. “서가에서 『오만과 편견』을 꺼내며 생각했습니다만,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이 훌륭한 소설을 썼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P.104) 여기서 ‘서가’란 버지니아 울프 자신이 수많은 책을 접해 축적한 의식의 실체인 것이다. 책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대단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누이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가상으로 상상한다. 『자기만의 방』에서 매력적인 소설 대목이다. 주디스 셰익스피어의 생애는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교육을 받거나 돈을 벌 수 있는 권리조차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여성에게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강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불합리한 갈등을 겪으며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시적 재능을 발휘해 보려고 시도한 천부적 재능을 지닌 여성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고 저지되었으며 자기 내면에서 상충하는 충동들로 고통받고 갈가리 찢겨서 틀림없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잃었을 거라고.” (P.77) 주디스처럼 16세기에 시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여성은 스스로에 대한 투쟁을 벌여야 하는 불행한 여성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여성이 자신의 작품을 온전하게 표현하고 그녀들의 재능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이 흘러가도록 시대상황이 허락하지 않았음을 울프는 강조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 (p.166)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창의성과 자유의 습성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의 거실에서 조금 탈출하여 인간을 서로에 대한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리얼리티와 관련하여 보라고 강조한다. 하늘이건 나무이건 그 밖의 무엇이건간에 사물을 그 자체로 보게될 때 가치 있는 일을 하게된다는 것이다. 사소하고 아무리 광범위한 주제라도 망설이지 말고 어떤 종류의 책이라도 쓰기를 울프는 권한다.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습관을 가지는 행위는 무한한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사고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논평과 방대한 추론들 사이에서 이해하기란 어렵다. 울프의 생각 세계로 빠져들어 갔다가 무엇인가 이해하고 나오기가 어렵다. 이 책은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는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각자의 짧은 인생에서 진정한 삶이란 무엇이고 가치 있는 일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셰익스피어의 누이처럼 가난한 무명인의 처지에서라도, 그녀가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시를 쓸 수 있다고 느끼게끔 만들었던 결단과 의지는 가치 있는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