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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열하일기>

글 쓰기 2024. 4. 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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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려거든 여행을 떠나라

 

열하일기(돌베개, 개정신판 2017)는 청나라 고종(건륭제, 1780)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떠나는 진하별사 박명원을 따라 525일부터 1027일까지 약 5개월간 북경을 거쳐 열하까지 다녀온 연암 박지원의 중국여행기이다.

열하일기를 집필한 시기는 조선후기 정조의 통치기간으로 국내외적으로 혼란스런 격변기였고, 유럽에서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였고, 청나라는 건륭제가 통치하며 최고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은 성리학의 영향으로 남의 문화를 멸시하고 새로운 정보를 주고 받으려 하지 않았던, 그래서 세계흐름의 변화를 인지하기에는 너무나 폐쇄적인 사회였다.

연암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 현재 우리의 시대는 굉장히 흡사한 부분이 많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고 시대의 변화에 앞장서 주도할 수 있는지, 어떻게 주체성 있게 살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연암의 열하일기을 완독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할 것이다.

 

 

연암의 뛰어난 성찰적인 사유가 일품인 [황교문답]에는 천하 형세의 관찰을 묘사한 부분이 있다.

황제는 서번(티베트)의 승왕을 맞이하여 스승으로 삼고 황금전각을 지어 그를 그곳에 거처하게 하고 있다. 천자는 무엇이 괴로워서 이런 특별히 격에 넘치고 사치한 예우를 하는가? 명목은 스승으로 모시면서도 기실은 황금전각 속에 그를 감금해 두고 세상이 하루하루 무사하기를 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본즉 서번이 몽고보다 더 강성함을 알 수 있겠다.“ ( 열하일기 , P174 )

소수민족에 대해 거대한 청나라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어떻게 통치하는가를 내면적으로 꿰뚫어 보는 연암의 안목이 대단하다.

지리의 힘의 저자인 팀 마샬 영국의 저널리스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중국인들은 티베트 문제를 인권이라는 프리즘으로 보기보다는 지정학적 안보의 틀에서 본다. 즉 중국이 티베트를 독립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티베트에 도로, 철도를 건설하고 중국 한족를 대거 티베트로 이동시켜 인구학과 지정학적으로 티베트 독립에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라고 나온다. 이를 보면, 230년 전의 연암의 통찰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연암은 열하에 있던 태학에 머무는 동안 왕민호, 윤가전, 학성, 기풍액 등 여러 사람과 해후하여 먼저 역대 왕조의 흥망을 논하고 이어서 음악의 잘잘못에 대해 토론한다. 그런 다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며시 단서를 열어 그들의 본마음과 지극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보기도 한다.

특히 [곡정필담]이 주목할 만하다.

곡정이 고금의 인물과 학술 및 의리를 논변할 때 그 평가 기준이 종횡무진 제멋대로인 것이 많았는데 아마도 나를 떠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늦게야 비로소 이를 깨닫고, 맹자의 한 단락을 끄집어내어 그를 시험해 보았는데, 곡정의 주장이나 논의는 역시 잡것이 섞이지 않은 진국이었다.” ( 열하일기, P 440 )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쓴 나의 아버지 박지원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버지께서 문장을 논하실 때면 늘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문장에 고문(古文)과 금문(今文)의 구별이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문장이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의 글을 모방하고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의 글을 본떴다고 해서 우쭐하고 으스대면서 지금 사람을 하찮게 볼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자세와 연암의 문학성에 감탄할 따름이다.

 

 

또다른 하나는 열하여행을 마치고 북경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옥갑이라는 곳에서 하룻밤 머물면서 비장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들을 묶어놓은 옥갑야화라는 글이다. 내용은 허생이라는 서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조선의 유통구조의 취약성, 이상사회의 제시, 북벌책의 허구성 등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명나라를 못 잊어하면서, 청조를 오랑캐라고 부정하고 멸시하는 것은, 조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완곡하게 피력하고 있다.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서 고정관념과 선입관에 사로잡혀서는 사물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 일화라 할 것이다.

이 대목을 읽고, 연암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과연 우리가 안다고 믿는 가운데 편견과 착각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진실을 알려거든 길을 떠나는 여행을 하라는 것인가?...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반 일들을 떠올려 볼 때 더욱 더 깊이 성찰하게 된다. ‘진실이 무엇인지?

 

 

연암의 학문과 문장은 그의 연암집 1, 2, 3 을 읽으면 확실히 만날 수 있다. 열하일기의 진수를 깊이 파악하고, ‘열하일기의 어떤 독자들은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대개 기이한 이야기나 우스갯소리를 써놓은 책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고 비통하게 생각하며 쓴, 연암의 처남 지계공 이재성(李在誠)연암제문이 깊이 있게 다가온다.

공을 좋아한다는 자들조차

공의 정수(精髓)를 안 건 아닙니다.

하찮은 글 주워다가

보물인 양 생각하고

우언이나 우스갯소리를

야단스레 전파했으니.

이 때문에 헐뜯는 자들

더욱 기승을 부렸지요.

우언은 궤변으로

세상을 농락한 것이고

우스갯소리는 실상이 아니요

거만하게 세상을 조롱한 것이다!“

좋아한다는 자나 헐뜯는 자나

참모습 모르기는 마찬가지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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