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에 대한 겸손한 자세
대구 김종협
요즘 화제의 책이 있다. 원제는 Why Fish Don't Exist(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인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지인 옮김, 곰출판, 2021)이다. 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가 자신의 전문 지식인 과학을 독특한 방식으로 서술한다. 과학적 사실 속에 숨겨진 삶의 질서를 이야기한다. 과학이라는 학문과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흐름을 써 내려간 논픽션 에세이다.
룰루 밀러(Lulu Miller)는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이다. 15년 넘게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National Public Radio)에서 과학 부문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인비저빌리아』의 공동 기획자이고, 『뉴요커』, 『오리온』, 『캐터펄트』 등에 꾸준히 글을 기고해 오고 있다. 룰루 밀러의 데뷔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워싱턴포스트’와 ‘시카고 트리뷴’에서 선정한 2020년 최고의 책이다.
화자인 저자는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삶의 무의미성에 고민한다. 스스로 파괴해 버린 삶의 파편을 이어붙이며 의미를 되찾아내려 시도한다. 그때, 여러 방면에서 혼돈과 싸웠던 어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의 삶을 접하게 된다. 혼돈이 공격해 올 때면 더욱 강한 힘으로 반격하는 특유의 삶의 방식을 가진 그에게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이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와 자료들을 찾아 읽어나가면서 책은 전개된다.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의 궤적을 전반부에 수록하지만, 진정 하고자 하는 말은 후반부에 나온다. 저자는 부제에서 말하듯이 삶의 숨겨진 질서를 파헤친다. 인간 편의로 그어 놓은 선, 그 너머 복잡성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편리하게 자연에 그어놓은 선 너머의 복잡성을 이해하고, ‘민들레 법칙‘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들레는 어떤 사람에겐 잡초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약초 채집가에게는 약재이고 화가에게는 염료이며, 아이에게는 소원을 빌게 해 주는 존재다. 우생학 관점에서 한 생명이 중요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대체하지 못할 우주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게,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 (p.228) 저자는 분노하면서 아버지에게 할 반박의 말을 내뱉는다.“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p.228)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제목처럼 물고기를 포기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물고기를 놓아주는 일은 그 결과로 또 다른 어떤 실존적인 변화를 불러온다라는 사실을 저자는 깨닫는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인지적으로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물고기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색을 보며, 특정한 기억 과제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실력을 보이고, 음악과 블루스를 구별할 줄 안다.”(p.251) 우리의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와 다른 생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지 저자는 한탄한다. 사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밑의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사랑스러운 여성의 만남을 얘기한다. “나는 그녀에게 키스했다. 이건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p.258), “이건 내가 그려왔던 인생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다.” (p.262) 저자는 물고기를 포기했을(사회의 범주를 부수고 나왔을) 때, 마침내 줄곤 찾고 있었던 것을 얻는다. 그것은 그녀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고기들은 저자가 그때까지 본 무엇과도 달랐다. 즉 함께 수영하는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어류가 아닌, 은빛 존재들 한 떼가 나를 향해 몰려오더니 나를 자기들 안으로 받아주었다. 네온색 물고기들이 그녀(사랑하는 여성) 주위를 둥글게 감싸 돌아 그녀의 등 뒤로, 겨드랑이 아래로 휘감고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P.262)
이 책은 많은 부분에 대한 기록이라 논할 얘기가 많은 것 같다. 제12장 민들레에 나오는 ‘애나’와 ‘메리’처럼 삶은 서로를 빈틈없이 돌보고, 믿어주고, 배려하는 힘이 작용해야 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모든 혼돈은 인간이 신이다라든지 자기만이 우월하고 사다리의 상꼭대기에 존재한다는 기만과 잘못된 우월성에서 비롯됨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다시 천천히 탐독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생명에 대한 겸손한 마음자세를 가져보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