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편견과 소통
대구 김종협
예전에 독서모임에서 “『대성당』을 읽어 보았는가?”라고 질문하는 회원이 있었다. 그 땐 읽지 않아서 무척 궁금해서 찾아 읽어야지 마음 먹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의심의 여지 없이 레이먼드 카버는 나의 가장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었으며, 가장 위대한 문학적 동반자였다.” 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극찬하기도 했다. 또한 비평가들이 『대성당』을 일러 가장 완벽한 단편으로 운운하기도 했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김연수 옮김, 2014, 문학동네)의 김연수 번역본을 읽어본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어라고 권유했는지...
레이먼드 카버는 1938년 미국 오리건 주 클래츠커니에서 태어났다. 1959년 치코 주립대학에서 문학적인 스승인 존 가드너를 만나 소설을 배운다. 이듬해 문예지에 첫 단편소설 『분노의 계절』이 실린다. 1963년 험볼트 대학에서 문학사 학위를 받고, 아이오와 주로 이사하여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 참여한다. 1983년 그의 대표작이라 평가받는 『대성당』을 출간하면서, 전미도서상과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다. 저서로는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밤에 연어가 움직인다』, 『울트라마린』 등이 있다.
『대성당』에는 총 열두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단연코 한편을 고르라면 『대성당』일 것이다. 화자의 아내에게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맹인 친구가 있다. 어느 닐 아내는 이름이 로버트인 그 맹인 친구가 곧 그들을 방문한다고 말한다. 화자가 아는 맹인이라고는 영화에서 본 사람들 뿐이다. 아내는 오래된 친구를 따뜻하게 맞이한다. 하지만 화자인 나는 모든 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기만 하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내는 잠이 들고, 맹인인 로버트와 나는 단둘이 남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에 나오는 소설 속의 공통점은 소통과 공감을 이야기하면서 감동을 준다. 자신의 좁은 공간에서 벗어나 비로소 타인과 세계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를 통해 뭔가를 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집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단편에 나온다. “그들은 이른 아침이 될 때까지, 창으로 희미한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p.128) 아들을 잃은 슬픔까지도, 빵집 주인의 외로움과 중년의 한계까지도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공감하면서 이해를 하는 것이다. 폐쇄된 공간 속에 갇혀 외부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성당』에서는 만날 수 있다.
소설 들 중 『대성당』에서는 편견과 소통에 대해 말한다. 화자인 나는 평소 맹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 언젠가 맹인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자기가 내뿜는 연기를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p.297) 이를테면 맹인이 아닌 자가 맹인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은 모두 편견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런 편견을 『대성당』의 말미에서 자연스럽게 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주인공 화자와 맹인인 로버트가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편견은 자연히 녹아내린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우리집 안에 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어디 안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 나는 말했다.” (p.311)
둘이 손을 포개어 잡고 펜을 들어 대성당을 그리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된다. 맹인에 대한 편견이 대성당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과정을 주인공은 감지한다. “ 내 손이 종이 위를 움진이는 동안 그의 손가락들이 내 손가락들을 타고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내 인생에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p.311)
레이먼드 카버의 열두 편의 단편소설에는 저자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언어 묘사가 특징이다. 문학적 스승 존 가드너에게 배운 작가의 역량과 깊이가 대단함을 느낄 수 있다. 읽기에 좋은 단문의 깔끔함이 있지만, 그 만큼 소설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는 단점 또한 있다. 그래서 『대성당』에 수록된 단편들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것일까? 옮긴이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 그게 과연 무엇인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는다.”에서 그 의미를 상상해 본다. 지금에서라도 ‘가장 완벽한 단편’으로 평가 받고, 미국 단편소설 르네상스를 주도한 리얼리즘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대표작을 접한 것만이라도 벅찬 기분을 만끽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