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자유로운 삶
1866년 발표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이문영 옮김, 2020, 문학동네)은 1850년 경제 공황 시기의 페테르부르크 빈민가를 무대로 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당시 사회의 문제와 분위기를 잘 반영한 이 작품을 통하여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사회에 이익이 되는 행위라면 어떠한 범죄도 용서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면 한두 사람쯤은 죽어도 괜찮은 건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는 소수가 희생되어도 된다는 건가?을 독자에게 생각케 하는 소설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는 1821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시골 귀족이자 빈민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46년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해 문단에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1849년 사상 죄목으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으나 처형 직전 감형되어 시베리아에서 4년간 혹독한 수형생활을 하며 수차례 심각한 뇌전증 발작을 껶는다. 이후 4년간의 병역 의무형을 마친 뒤 1859년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와 창작 활동에 매진한다. 저서로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 다수가 있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가난한 지식인이다. 그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노파가 가난한 사람들의 물건을 거의 뺏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사회에서 불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돈을 빼앗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른 그는 몹시 괴로워하다가 착하고 순수한 여성 소냐의 권유로 자수를 하게 된다. 다행히 사형을 면제받은 라스콜리니코프는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시베리아 형무소에 8년 동안 갇혀 있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살인은 얼핏 보면 정의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탐욕의 과정이라 암시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단번에 인생을 바꾸고 싶었고 모든 사람들의 우상이 되고 싶었다. 그는 인간을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으로 나눴는데 비범한 사람은 법과 도덕과 윤리를 초월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즉 두뇌와 정의감까지 갖춘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 없이 도덕률을 무시할 만한 베짱까지 지냈다면 초인으로 존중 받게 될 것이라 믿었다. “비범한 사람은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온갖 방법으로 법을 뛰어넘을 권리를 갖는데, 그건 그들이 말 그대로 비범하기 때문이야.“ (p.1권 401) 하지만 주인공은 노파에게서 훔친 돈을 쓰기는커녕 오히려 죄의식에 사로잡혀서 열병을 앓는다. 아무도 그에게 벌을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라스콜리니코프는 악몽에 시달리며 두려움에 떤다. 끝없는 고독감과 음울한 소외감이 그의 영혼 속으로 파고 들었다. 죄를 지은 정신적인 고통은 영원히 피할 수 없는데, 이게 더 무서운 벌인가?
저자는 신보다 더 강력한 소냐라는 인물을 상징화 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불안을 견디다 못해 매춘부 소냐에게 자신의 죄를 실토한다. 소냐는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받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깨끗한 인물이다. “지금가요. 당장요. 십자로에 서서 먼저 당신이 더럽힌 땅에 절을 하고 입을 맞춰요. 그러고 소리내어 말해요. ‘제가 죽였습니다!’라고 그럼 하느님이 당신에게 다시 삶을 내리실 거야.” (p. 2권 232) 소냐는 자수를 권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다시 연결되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타인과의 건강한 유대와 겸손과 헌신과 사랑을 통해서만 인간은 새로운 생명을 부여 받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을 통해 『죄와 벌』에서 무엇을 강조 하고자 한 것일까? 그것은 자유일 것이다. “7월 초 몹시 무더운 저녁 무렵, 한 청년이 S골목의 세입자에게 빌려 살고 있는 골방에서 거리로 나와 망설이듯 천천히 K다리로 향했다.” (p. 1권 9)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자기 내면의 감옥에서 나와서 어딘가를 향해, 즉 자유를 향해 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삶을 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로지 힘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증오와 절망과 딘절의 감옥에 갇혀 버리고 만다. 자유는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와 내 주변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진다. 이런 자유로운 삶은 유대에서 오는 만족감과 조건 없는 사랑에서 오는 잔잔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너무나 많이 우리에게 알려진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버지니아 울프는 말한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은 순수하고도 온전한 영혼의 형질로 이루어진,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이자 소리내면서 끓어오르며 우리를 삼켜버리는 물기둥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우리에게 묻는다. 마음 속의 감옥에 갇힌 삶을 살 것인가?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의 혼란스러운 현 시국에서 한번 쯤 조용히 읽어볼 만한 작품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