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대구 김종협
5월의 신록 계절에 읽을 만한 책이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김욱동 옮김, 민음사, 2018)이다. 이 소설은 유럽과 북아메리카 대륙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나라에서 많이 읽히는 작품 중 하나다. 예전에 읽었을 때는 주인공 조르바가 기이하다(잠자리를 같이 한 여성의 음모를 몇 가닥씩 뽑아 베개를 만듬)란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 다시 접한 『그리스인 조르바』는 예전에 느낄 수 없었던 신성한 충격과 삶의 지혜를 맛보게 해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주인공 조르바를 통해 솔직하고 자유로운 정신을 독자들에게 일깨워 주고자 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아테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07년 파리로 유학해 베르그송과 니체의 철학을 공부한다. 1917년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실존 인물인 요르기오스 조르바스와 함께 갈탄 채굴 및 벌목 사업을 했는데, 이 경험이 이후 『그리스인 조르바』의 모태가 된다. 작품으로는 『돌의 정원』, 『알렉산드로스 대왕』, 『크노소스 궁전』, 『성자 프란체스코』 등이 있고, 여행기로 『스페인 기행』, 『지중해 기행』, 『러시아 기행』 등이 있다.
저자의 자화상으로 보이는 소설 속 주인공 ‘나’는 항구 도시 피레우스에서 조르바와 조우한다. 나는 붓다의 사상에 심취해 있으며, 크레타 해안에 갈탄광을 빌려 새로운 생활을 하려 나선다. 조르바는 관찰자의 눈으로 나를 골라 다가와서는 다짜고짜로 자신을 데려가라고 주장한다. 기이한 행동과 인상, 강렬한 시선, 통쾌한 대화 등 무언지 모르게 나는 조르바에게 끌린다. 자유분방한 모습에 매료된 나는 그와 동행한다. 크레타 섬의 어느 한 광산에서 그들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들을 보내게 된다.
이 소설의 주제를 딱 한 두가지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어느 일부분만을 말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소설 전체가 주제이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그래도 요약한다면, 카잔차키스는 이 소설에서 현실의 삶을 사랑하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조르바를 통하여 인간이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나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대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의 질서나 사회적 규범을 맹목적으로 따르다 보면 개인은 자칫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의 삶에 충실할 것을 강조한다. 어찌 되었든 내세를 믿지 않는 조르바는 현세의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주인공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태어나서 처음 바라보는 것처럼 대하곤 한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선하고 새롭다. “난 지나간 일은 기억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일도 계획하지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오. ‘조르바, 자네 지금 뭐 하고 있는가?’ ‘일하고 있네.’ ‘그럼 일을 잘하게!’ 나머지 일은 깡그리 잊어버리는 거야.” (P.481)
또한 저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행동하라고 말한다. 즉 카잔차키스는 죽음을 전제로 한 인간의 삶이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실존주의자들처럼 카잔차키스는 삶이 일회적이기 때문에 더더욱 경외감을 갖고, 소중하고 값지게 여겨야 한다고 믿는다. 삶은 일회적이기에 오히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이다. “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처럼 살고 있는걸요.” (P.70) 조르바의 말처럼 순간순간 죽음을 염두에 두며 행동하는 것이 더 맞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창가에서 그분은 창틀을 거머쥔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먼 산을 바라보며 웃다가 말처럼 힝힝거리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는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P.544) 마지막 순간까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는 조르바에게 일종의 경외감이 든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 걱정이 앞선다.
이 소설은 카잔차키스의 뛰어난 풍경 묘사가 많이 나온다. “따뜻한 남풍이 아프리카 쪽에서 불어와 채소며 과일이며 크레타 사람들의 가슴을 한껏 자라게 하고 부풀게 하고 있었다. 나는 이마로, 입술로, 목으로 그 바람을 맞았다. 과일이 영글 듯 내 머리도 딱딱 소리를 내며 여물어 가는 것 같았다.” (p.478) 소설 군데군데에서 묘사되는 저자의 직관과 상상력에 빠져보는 즐거움도 이 책의 묘미이다. 주위의 대자연을 바라보며 풍경을 묘사하는 저자의 시각적 감각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는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틀로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들에게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다 아는 체하는 우리들에게 가치관과 신념을 반성하게 만드는 신성한 충격을 안겨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을 때의 느낌은 또 어떻게 다를지 꼭 다시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