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의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사람을 빌려 사람을 읽는다
‘책 대신 사람을 대출해서 읽는다.’라는 특이한 책이 있다. 김수정의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달, 2009)가 그것이다. 작가 김수정은 방송작가로 시작하여 바깥 세상이야기를 만드는 1인 PD로 여러 나라 사람들의 삶을 우리에게 소개해 오고 있다. 그러던 중 2008년 영국에서 개최된 ‘리빙 라이브러리 (Living Library)’에 독자로 참가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그 사람들에 대한 휴먼 에세이이다.
‘리빙 라이브러리’란 도서관에 와서 책을 빌리는 대신 ‘사람’을 빌린다는 것이다. 독서목록을 보고 읽고 싶은 사람을 선택해서 대출하여 그 사람과 마주앉아 자유로이 대화를 통해 인생을 읽는다는 것이다. 이 컨셉의 창립자인 로니 에버겔은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했다.”(p. 9)고 말한다. 살면서 우리는 각자가 가진 가치기준으로만 상대방을 판단한다. 하지만 가치기준은 오해를 불러일으켜, 상대방에 대해 알기도 전부터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불신과 미움을 가지게 만든다. 이 리빙 라이브러리에서는 그러한 시각을 줄이는 적어도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리빙라이브러리는 2000년도에 덴마크 청소년 축제에서 이벤트로 시작하였다가 유럽 다른 나라와 호주,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폴란드 등 수십 개국으로 퍼지고 확대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공공 도서관과 자치단체 등을 통해 이벤트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한 ‘대풍이네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와 인천광역시 율목도서관에서 개최한 ‘리빙라이브러리’ 강연이 그 예이다. 프로그램은 참가자가 사람책이 돼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독자와 함께 공감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필자가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에서도 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이 이벤트가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나’라는 작은 세계에 머물던 자세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 조금씩 시야가 트이게 된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이런 경험을 간접체험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책에는 자신만의 인생의 가치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저 마다 다름과 그 다름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안고도 희망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김수정은 런던에서 열린 리빙 라이브러리에서 사람 책을 대출해서 대화한 경험을 진솔하게 표현한다. 신 없이도 얼마든지 인생을 풍요롭게 이끌어갈 수 있다는 휴머니스트, 사회적 편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레즈비언, 예순에 무작정 가출하여 여든에 시인이 된 할머니 등 다양한 16편의 인생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중에서 인상깊은 것은 예순 살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진 클락이라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제가 이렇게 자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제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는지도 몰랐고요.” (p.61) 이처럼 진 클락 사람 책에서 진정한 노후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자기가 바라는 것을 한 번의 용기로 도전하는게 최고의 노후가 아닐까.
‘사람을 빌려 사람을 읽는다. 어느 영국 도서관 이야기’ 부제처럼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개개인 모두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에선 아예 자신을 한 권의 책이라 선언하고 뽑아서 읽어달라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당신 인생에 나를 들여놓아 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한 권의 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잊히지 않는 단 한 권의 책을 만나길 희망하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많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삶의 모양은 사람들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에세이는 김수정의 따뜻하고 재치있는 글로 신선함을 안겨준다. 런던의 사람 책을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를 재조명하게 만드는 책이다. 만약 나라면 어떤 책(사람)으로 대출해 줄지...... 좀 괜찮은 책 또는 사람으로 타인에게 다가갈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시간을 안겨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