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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의 <복자에게>

글 쓰기 2024. 4. 1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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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삶을 진심으로 용인하고 관용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슬프지 않게 된다

 

 

몇 년 전에 전남 여수의 요트 선착장에서 잠수 작업을 하던 특성화고 실습생이 바다에 빠져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실습생들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일해야 하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위험한 노동에 내몰려 목숨을 잃은 상황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건지 참담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다. 현실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알 수 없는 슬픔이다. 이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소설이 있다.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사건과 그 소송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김금희의 복자에게(문학동네, 2020)가 그것이다.

 

 

김금희 작가는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중편소설 나의 사랑, 매기와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상, 2020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한다.

 

 

1999년의 초봄, 열세 살 소녀 이영초롱은 부모의 사업실패로 인해 제주의 고고리섬 보건소 의사로 일하던 고모에게 맡겨진다. 주인공(이영초롱)은 그곳에서 복자라는 촌스런 이름의 또래 여자아이를 만난다. 복자는 이영초롱이 겪은 나쁜 일이 할망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서라며 다짜고짜 그를 할망당으로 이끌고 간다. 작은 섬 고고리섬에서 주인공과 복자는 자연스레 단짝이 된다. 그러나 둘의 우정은 마을 어른들 갈등에 휩쓸리며 위기를 겪고, 제대로 화해할 겨를도 없이 주인공은 서울로 돌아가게 된다.

 

 

먼저 이 소설은 슬픔을 끌어안는 삶의 방식을 강조한다. 자는 이영초롱의 삶을 통해 슬픔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에게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실패 혹은 슬픔의 경험이 사람을 완전히 무너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다른 방식으로 살려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실패를 미워하는 것과 실패한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가 아빠를 미워했어. 아빠가 실패해서 아빠를 미워했어. 그런데 그러면 나는 아빠가 아니라 실패를 미워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빠를 안 미워했어.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p.61) 실패는 이어져도 삶 자체의 실패는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사람이 겪게 된 어려움을 좀 덜어줄 때 그 실패의 당사자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설 곳곳에는 슬픔을 끌어안고 상처를 함께 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 복자에게는 제주의 영광의료원에서 일어난 산재사건의 소송을 통해 사회적 슬픔 또한 조망한다. 복자는 힘없는 여성 근로자이자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임에도 모든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동분서주한다. 간호사들이 유독성 물질이 포함된 가루약을 빻았다는 증거를 찾으러 다니지만 진료기록 하나 제공받지 못한다. 결국에는 환자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 필요한 자료를 얻어낸다. “사망자의 진료기록이, 그렇게 누군가의 죽은 기록이 살아 있는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내 상상을 벗어나는 일이었어.” (p.228) 제주 의료원 산재사건의 이야기는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들을 형상화해 보여준다. 저자는 사회적 불합리함과 모순이 안겨주는 슬픔은 여성 근로자, 사회적 약자들을 옥죄고 짓누르기에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잠수작업 중 숨진 고3 실습생의 사고를 바라보며, 이 소설 복자에게가 더 다가왔다.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노동 현장에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슬픈 삶을 진심으로 용인하고 관용할 때 비로소 우리는 슬프지 않게 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들을 한번 쯤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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